우리 터, 우리 혼 성곽
최진연 Choi jin yeun
‘성곽 안에서 오천년 역사를 지켜온 나라’
산 산 고을고을에
쌓아올린 석림은 허물어지고
구국일념으로 스러져간
민초의 넋 말없이 우는데
돌보는 이 하나 없다.

선인들의 숨결 더듬으며
찾아 나선 30여년의 세월
뉘라서 알까만,
그래도, 그래도 .......
나 여기 천착하며 살련다.

위의 글은 산성취재 갈 때 마다 느낌을 정리한 글이다.

우리 땅(남한)에 남아 있는 성터는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수집한 문헌을 뒤져 산등성이나 계곡에 버려진 산성을 찾아 다녔다. 길게는 3,000년에서 짧게는 200년 세월의 더께가 두툼하게 눌어붙은 이끼 낀 성벽을 찾아다니는 것은 고행의 연속이다. 하지만 깊은 계곡에서 고즈넉한 옛 성터를 만나면 고행은 잠시뿐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것처럼 반갑다.

산성에서 우연찮게 성돌에 새겨진 각자(刻字)또는 유물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고달픔은 사라지고 반가움에 가슴이 뛴다. 역사냄새는 역시 현장에 가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산등성에서 문득 마주치는 이들 산성들은 북한산성, 남한산성, 수원화성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옛이야기를 품고 있다.

최북단 태봉국 궁예도성에서 제주의 향파두리성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도 어림잡아 2,000여 곳 을 헤아린다. 앞으로 얼마가 더 발견될지 알 수 가 없다.

성곽은 우리민족의 마지막 보루임과 동시에 생존운명의 공동체였다, 역사의 진실을 간직한 성곽, 그 비밀창고를 찾아가본다.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 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곽을 보유한 나라다. 높은 산에는 석성이 있고 낮은 산에는 토성이 있으며, 평지나 바닷가에서는 역사의 이끼가 낀 읍성의 성벽들이 산재해 있다.

유사 이래 930여 회의 외침을 당한 나라, 국난을 당했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 성곽을 지키려고 결사항전 했던 호국의지의 표상들이 현대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훼손 방치돼가고 있다. 성곽의 파손과 인멸은 곧 우리의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다. 국난의 순간들을 지켜본 성곽, 그중에서도 산성은 현재 대부분 원형파악이 어렵고 남아 있는 것 마저 토성은 유실되고 석성은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곽은 언제부터 축성됐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라고 전한다. 초기에는 나무기둥을 엮어 만든 목책성이었으며, 차츰 토성으로 발전해 갔다.

현재 복원 해 놓은 ‘몽촌토성’은 성이라기보다는 고향의 언덕을 연상시킬 정도로 허술해 보인다. 그러나 이 성은 한강의 물줄기를 토성밖으로 끌어들여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인력과 경비가 많이 드는 석성은 3세기 이후에 등장했다. 산성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축성했다. 성벽은 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연결해 가장 낮은 계곡에 성문과 수구를 설치하고 조망권이 우수한 위치에는 망대를 세웠다.

삼국시대의 고구려는 축성술이 뛰어났다. 충북 단양의 ‘온달성’은 남한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고구려식 산성이다. 남한강 상류절벽을 끼고 해발 400m의 산 정상에 수직으로 쌓아 올렸다. 특히 성벽의 휘어지는 곡선부분은 고구려 조형미의 극치라고 평가받는다.

백제는 두 번이나 천도를 한 불운 탓으로 삼국가운데 가장 많은 성곽을 축성했다. 백제의 성곽 중 금강과 황산벌이 한눈에 조망되는 부여군 임천의 ‘가림성’은 성벽 겉면만 석축으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다졌다. 백제의 기백이 묻어나는 산성이다.

고구려와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신라는 일찍부터 성을 쌓기 시작했다. 신라의 대표적인 성곽은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당시 전초기지로 삼았던 성이다. 성벽 높이 20m, 폭 5m의 거대한 철옹성으로 신라 성곽의 백미요, 한국산성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은 강화산성이다.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이산성은 몽골의 침입으로 개성이 함락 당하자 강화도에 임시수도를 옮기면서 축성한 것이다. 내성·중성·외성으로 쌓은 산성은 토축이다. 고려는 수많은 외침 때문에 석성 보다는 경비가 적게 드는 토성을 많이 쌓았다. 특히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략으로 해안지방에 읍성을 많이 축성했다.

조선의 성곽 가운데는 최초의 과학적으로 쌓은 ‘수원화성’이 대표적이다. 화성은 산성과 읍성을 아우른 한국성곽의 꽃으로 평가받는다. 축성당시 원형이 보존된 서북공심돈과 화홍문 등은 조선후기 문화의 향기가 가득 배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개혁군주 정조임금의 카리스마로 축성된 걸작품이다.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은 성주 일가족을 위해 쌓은 외국의 성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사시 인근의 백성들까지 성안으로 들어와 민·관·군이 함께 결사 항전하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사의 현장인 동시에 잃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간직한 보물창고다. 고조선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여정의 기록이 불타고 파묻힌 곳이다. 그 잃어버린 과거의 진실이 성곽 속에서 있다.

성곽은 우리민족과 늘 함께 있었다. 적의 외침이 시작되면 산성에 들어가 결사로 항전했다. 오천년 역사에 산성만큼 환희와 비애를 깊이 간직한 곳이 어디 있을까. 산성은 그 자체가 역사며 삶이었다. 1,500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옛 군사들이 섰던 그 성벽에는 남북이 대치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나라다.

산성을 답사한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지금도 취재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고 긴장된다. 답사초기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 산이 민둥산이라 성벽도 잘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산림녹화 성공으로 숲이 무성해 통행마저 어렵다.

산등성이를 홀로 다니다보면 등골이 오싹한 곳도 있다. 급경사에 수 십 미터의 절벽도 부지기수다. 한번 동행해본 사람은 산성답사 가기를 꺼릴 정도로 위험구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산성답사에는 챙길 물건도 많다. 카메라는 기본이며, 줄자, 호루라기 등 등, 허리춤에는 빠짐없이 톱을 달고 다닌다. 성벽을 헤칠만한 나무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한때 찬란하던 옛 성터는 이제 참담하다. 널브러진 성 돌만 쓸쓸히 남아 세월의 무상함이 가득 서려있다. 성곽안에서 오천년 역사를 지켜온 나라, 하잘것없는 돌의 흔적이라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유적이며 문화재라는 것을 인식해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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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터, 우리 혼 성곽 2014-11-05
2 여군 20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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